이득수 시인의 포토에세이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표지.(사진=인저리타임 제공)
이득수 시인의 포토에세이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표지.(사진=인저리타임 제공)

[데일리그리드=전민 기자] 이 책은 불치병으로 죽음의 낭떠러지에 선 노시인이 부르는 자연과 인생의 노래다. 이 책은 또 아름다운 기적의 증거이기도 하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는 불치병이 두 가지를 선물해줬다고 한다. 하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로서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졌다는 점이란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일한 마음의 노시인이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과 내면의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 적은 에세이 한 편 한편은 하나같이 술술 읽히고 감동적이다. 가히 에세이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저자는 공직을 퇴임하고 귀촌해 소박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급성간암으로 쓰러졌다. 의사는 “맛있는 음식 마음껏 드시라”고 했다.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도 들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현실로 다가오자 한 생애 스쳐간 인연들이 불현 듯 떠올랐다. 시인은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하고 가슴을 비워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가슴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 없었다. 죽음의 낭떠러지에 섰음을 자각했을 때 산과 들과 하늘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다. 시인은 저도 모르게 사진을 찍고 메모를 했다가 ‘명촌리 사계’라는 제목을 달아 카톡으로 지인들에게 안부 삼아 전했다. 뜨거운 호응이 이어졌다. 명촌리는 저자가 귀촌한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 

처음 시작할 땐 한 계절을 채울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고, 사계절을 채운다면 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사계절을 다 채우고 같은 계절을 네 번이나 맞았다. 6월 11일 현재 1000회를 기록했다.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노시인은 이제 완치 판정(5년 경과)을 앞두고 있다.

이 책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는 ‘명촌리 사계’에서 100여 편을 가려 뽑아 엮은 것이다. 일기처럼 매일 쓴 에피소드 하나 하나는 노시인을 죽음의 낭떠러지에서 끌어올려준 기적의 손이나 다름없다. 

이 책은 모두 6부로 구성됐다. 제1부 ‘명촌리의 사계’는 아직도 야생이 잘 보존된 귀촌지 명촌리의 자연환경과 인심을 그렸고, 2부 ‘야생 속으로’는 산책길에서 만난 들꽃과 새와 짐승들을 관찰하듯 묘사했다. 3부 ‘늙지 않는 몽상가’는 인생을 관조하는 노시인의 행복한 몽상을 담았고, 4부 ‘마초와 아이들’은 애견 마초와 눈부시게 푸르른 네 손녀들에 대한 애정을 노래했다. 

제5부 ‘할배와 버든사람’은 도시개발로 사라진 생가마을을 추억하는 노시인의 망향가이며, 마지막 제6부 ‘샤갈의 마을’은 귀촌집 ‘명촌별서’에서 접시꽃 같은 아내와의 일상을 그렸다. 

책장을 넘기노라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구름 한 점에도 애정이 듬뿍 담긴 노시인의 눈길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또 가족과의 인연 특히 누님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절절한 그리움과 서러움이 짙게 묻어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눈부신 현대의학이 손을 들자 눈앞에 다가오는 산과들과 하늘이 갑자기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일상의 바람도 싱싱하고 세상의 모든 음악은 감미롭고... 이제야 삶이 무엇인지, 글이 무엇인지 조금 알 듯하며 글쓰기가 한결 쉬워지기 시작했다.’(프롤로그 중) 

저자는 오늘도 명촌리 들길과 못둑을 애견 마초와 허위허위 걷는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하루를 더 산다면 하루치의 글을 더 쓰겠다고 한다. 

▷저자 이득수는

시인이자 소설가. 간암말기에도 끄떡없이 문학청년의 꿈을 키워가는 일흔 살의 몽상가(夢想家). 젊은 시절 술과 문학을 사랑해 평생 헤어나지 못한 낭만파 미련퉁이. 생활고로 소설가의 꿈을 포기하고 호구지책으로 나선 공직에서는 기발한 발상과 실험정신으로 괴짜공무원 소리를 듣기도. ‘줄 서기’ 촉이 발달하지 못해 늘 비주류 신세.

꿈꾸는 자에게 좌절은 없느니, 아무리 힘들어도 오뚝이처럼 일어났고 주경야독으로 문학 혼을 불살랐다. 아련한 연시(戀詩)집 3권은 부산지하철문고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정년퇴직과 함께 귀거래사를 외치며 신불산에 돌아왔으나 아뿔싸, 간암말기의 시한부 인생 선고라니. 아찔한 낭떠러지에서 모든 걸 내려놓자 세상은 아름답게 다가왔다. 비로소 꿈꿔왔던 행복한 글쓰기 삶을 누리게 되었다고.

아아, 그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지기를, 필생(畢生)의 대하소설 「신불산」이 무사히 세상에 나올 수 있기를...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 부산시 9급 공무원 입사, 1994년 《문예시대》 시 부문 등단. 시집으로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불황시대》 《비오는 날의 연가》, 수필집《달팽이와 부츠》,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2009년 부산 서구청 총무국장으로 명예퇴임. 2015년 신불산 간월산 자락 명촌리에 귀촌. 간암말기 선고 후 포토 에세이 「명촌리 일기」 연재 시작, 6월 11일 현재 1000회 돌파. 7년간 집필한 대하소설 「신불산」(200자 원고지 약 4만 장) 퇴고 중.

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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