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정너'식 결과가 나온다면 원천 무효 -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위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10일 법무부 차관 회의실에서 '판사 사찰 문건' 작성 등을 이유로 검사징계위원회를 열고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강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윤석열 총장 징계 문제에 대해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징계위원회의 구성을 살펴보면 윤 총장에 대한 징계가 얼마나 억지인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이날 징계위는 시작부터 위원 명단과 징계 기록의 미공개 등 절차적 위법성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윤 총장 측은 특히 위원들의 편향성을 문제 삼았다. 징계위원 7명 가운데 징계청구권자인 추 장관이 빠지고, 외부위원 1명이 불참하면서 5명으로 구성됐으나, 모두 친 정부 성향이라는 주장이다.

우선 논란이 됐던 징계위원장 직무대리는 민변 출신의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그는 현 정권에서 법무부 검찰개혁위와 과거사위 위원으로 활동한 친정부 인사로  반(反)윤석열, 조국 옹호에 앞장섰고 조국 부부 무죄를 주장한 데 이어 한 세미나에선 "윤 총장이 저렇게 저항하는 걸 전관예우라는 틀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 된다"며 윤 총장을 비난했던 인물이다.

또 다른 민간외부인사는 안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지방선거 때 여당 공천심사위원을 지냈다.

여기에 정부위원으로 들어온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반발 사표를 낸 이틀 뒤 문 대통령이 차관으로 임명해 당연직 징계위원이 되게 했다. 문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인 이 차관은 문 대통령 재촉에 따라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한 과정의 불법 조작 피의자 변호인으로 그 직전까지 활동했던 사람으로 이런 면면만 보더라도 추 장관이 막판까지 징계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알 만하다.

이로써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일주일 만에 실체가 드러났다. 공정한 시늉이라도 내려 한다면 지금 징계위를 해산하고 재구성해하는 것이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에 부합하다.

징계위 회의는 초반부터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시비로 시작됐다.

징계 청구인인 추 장관이 징계위원회를 구성·소집한 것부터 위법적이다. 윤 총장 측은 징계위원 4명에 대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기피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징계위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9시간여 진행됐지만 치열한 공방 속에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오는 15일 2차 기일을 잡고 정회했다. 윤 총장 측은 징계 청구 사유를 두고 사실관계가 잘못됐거나 징계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혐의를 주장했다.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포함해 징계절차의 적절성 공방이 거듭돼온 터에 징계위 구성마저 의심받는다면 징계 결과는 신뢰를 얻기 힘들다.

마침 어제(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의 의결정족수를 '7명 가운데 6명'에서 '3분의 2 이상'으로 완화하고 공수처 검사 자격도 '변호사 자격 10년 이상'에서 '7년 이상'으로 낮추고, '재판·수사·조사업무 5년 이상 수행'을 삭제했으며, 각 교섭단체가 10일 이내에 추천위원을 선정하지 않으면 국회의장 직권으로 한국법학교수회 회장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을 위원에 위촉하는 내용이 담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검찰 안팎에선 윤 총장이 공수처의 1호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며, 여당이 공수처장 후보에 대한 야당의 비토권을 없엔것도 공수처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의심하는 이들에겐 두고두고 공격거리가 되고 있다.

1년째 이어진 추ㆍ윤 갈등은 검사들의 반발과 정국 혼란까지 불러 대통령이 사과하기에 이르렀으나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양보 없는 대치로 볼 때 징계위 결정 이후에도 추ㆍ윤 갈등이 해소되기 보다는 장기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징계위가 요식행위로 변질돼선 안 된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징계위가 적당히 시간을 끌며 토론하는 척하다가 해임 등 중징계를 내리는 '답정너'식 결과가 나온다면 원천 무효고, 징계위 결정도 불법이다. 그러면 당사자인 윤 총장도 국민도 납득 할 수가 없다.

당리당략에 얽매여 절차상 흠결을 남기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김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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