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과 진심

  요즘같이 혼란한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평상을 회복하기를 갈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마다 혼자만의 공간 속에서 자신을 한번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평소에 유가(儒家)의 경전을 읽으며 인격수양을 중시하는 선비처럼 수양된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자연스런 일이겠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급급히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그렇게 할 여유조차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평정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면 좋은 일을 봐도 만족하지 못하고 목전의 이익을 추구하는 현실에 항상 고식적이고 분주할 뿐이다. 더욱이 다급한 일에 처하면 요령부득일 것이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한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다. 수양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마음이 여유로울 것이다.

  이순신은 일찍이 전란 중에 급한 일에 처할수록 오히려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하라고 부하들에게 당부하였다. 마음의 여유를 찾아 경거망동으로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① 지금에 급급한 일이지만, 오히려 신중히 하여 경솔하게 싸워서는 안될 것입니다.
② 대장(大將)의 명령은 오히려 신중히 하여 가볍게 내려선 안될 것이니, 일이 비록 뒤의 것을 생략할 만큼 급속히 해야 할 것일지라도 인정과 형세를 살피고서 처리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교감완역 난중일기》계사년 3월 22일 이후기록-

항상 신중하고 침착한 자세로 급한 일에 대응한다면 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순신이 옥포해전 당시 처음 전쟁에 임하는 부하들에게 말한 “정중여산(靜重如山)”도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혼돈으로 인한 갈등과 중론의 횡설이 범람하는 때 진리의 기준은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공자가 “교언영색(巧言令色, 듣기 좋은 말과 보기 좋은 낯빛)은 인(仁)이 드물다鮮矣仁]”고 말했는데, 오히려 현실은 진실보다 교언영색이 이득을 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참으로 처세함이 어려움을 느낀다. 새해 신축(辛丑)년을 주역(周易)으로 풀면 지택림(地澤臨)괘에 4효가 동하니, 육사(六四)의 “지극히 임하여 허물이 없다(至臨无咎)”는 괘사가 나온다. 이 괘에 대해 중국 북송(北宋)의 횡거(橫渠) 장재(張載)는 “순리를 본체로 삼아 정도에 응하면 응하는 도리를 다할 수 있다”고 해석하였다.

  현재의 상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순리를 따르고 올바른 생각으로 바르게 나아가면 끝내 불변의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항상 이치에 맞는 생각과 정도로써 나가야 한다. 특히 전란 중에 이순신이 보여준 백의종군의 숭고한 정신은 오늘날 정치 목적으로 말하는 백의종군과는 차이가 있다. 정심응물(正心應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말들은 한갓 붉은 화로 위의 눈[紅爐點雪]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치에 맞는 진심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본성이 작용하므로 뭇사람의 감응이 따르게 된다.

   글 : 《교감완역 난중일기》저자 노승석(여해고전연구소장)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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