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이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저런 실망감에 속이 상한 일이 있지 않은가?

매년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시가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설움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오고야 말리니..."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 1799~1837)이 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다.

푸시킨은 그의 이름을 딴 '푸시킨 신인 문학상'까지 있을 정도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과 함께 러시아의 대문호로 평가받는다.

이 위대한 시인은 그가 쓴 글과는 많이 다르게 살았다.

그의 삶 마지막 또한 결초 초연하지도 평온하지도 않았다. 그는 1837년 1월 말 늦은 오후에 아내의 정부와 분노 속에 결투했고, 총을 맞은 그는 이틀 뒤에 숨을 거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위로가 될 때가 많다. 특히 비통하고 참담할 때는 더 그런 것 같다.

작년 하반기에 몇몇 지인을 만났다. 삶에 큰 실망을 한 분이 있었는데, 위로할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물론 말할 위치도 아니었지만, 그분의 말 속에서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푸시킨의 시처럼 살기는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올 2월이면 졸업하는 학생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만나는 삶에서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지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들도 나도 잘 안다. 배신자와 배덕자가 승승장구하고 편법이 정도를 가볍게 여기는 세상,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실망감과 허탈감이 가득한 세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작년 12월 말, 조금 늦은 시간에 한 친구를 잠깐 볼 기회가 있었다. 정이 많고 인간적인 친군데, 그 날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올해 볼 기회가 된다면, 많이 지친 그 친구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네 진심과 진정성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너무 속상해 하지마! 오히려 너라는 귀인을 모르는 상대가 불운할 뿐이야."

물론, 졸업을 앞둔 학생과 삶에 조금씩 지친 이에게도.

글: 백진욱, 안산대 금융정보과 교수

백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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