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의식

   사람에게는 누구나 과중한 업무로 힘들어할 때가 있다.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일의 경중을 따져서 중요한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요령껏 하겠지만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우왕좌왕하며 요령을 얻지 못할 것이다. 《대학》에 “사물에 본말(本末)이 있고 일에 시종(始終)이 있는데 먼저하고 나중에 할 것을 알면 추구하는 목표에 가까워진다.”고 하였다.

  이순신은 전란 중에 일의 경중을 헤아려 선후를 구분했는데, 조선의 요충지를 사수하기 위해 군민(軍民)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급선무로 여겼다. 군민이 해이해지면 병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은 우리나라의 최대 곡창지로서 군량조달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곳을 사수하는데 만전을 기했다.

  먼저 전례를 따라 변방의 방어를 견고하게 한 다음 군사와 백성의 고통을 구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국가가 호남과는 마치 제(齊)나라의 거(莒), 즉묵(卽墨)과 같은 형세인데, 현재는 온몸에 고질병이 있는 자가 병든 다리 하나만으로 겨우 지탱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난중일기》 임진년 8월 28일 이후기록 -

호남은 중국 전국시대 때 연(燕)나라 장수 악의(樂毅)가 공격했어도 함락되지 않은 제(齊)나라의 거(莒)와 즉묵(卽墨) 땅과 같은 요충지이었다. 이에 이순신은 호남을 거와 즉묵처럼 사수할 만한 국가의 중요한 번진(藩鎭)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당시 호남은 전란으로 인해 매우 심한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이순신은 작전 시에 항상 적을 완전히 소탕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사소한 적의 침입에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갑오년 2월 13일 경상군관 제홍록(諸弘祿)이 적선8척이 춘원포에 침입한 사건을 보고하자, 이순신은 “작은 이익을 보고 들이친다면 큰 이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見小利入勦 大利不成], 아직 가만히 두었다가 다시 적선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회를 엿보아서 무찌르기를 작정하자.”고 하였다. - 《난중일기》갑오년 2월 13일 -

  왜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전쟁을 하는 것이 오히려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근본적으로 큰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은 일을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순신은 항상 전쟁할 때마다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여 왜적들을 일망타진했다. 이러한 전략은 공자가 “작은 이익에 눈을 돌리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見小利則大事不成].”고 말한 것(《논어》〈자로〉)과 상통한다.

  요즘 우리는 무엇이 중하고 가벼운 것인지 선후를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혼돈의 세상을 살고 있다. 이순신이 선후를 가린 기준이 국난극복이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선후를 가리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도덕성과 물질 사이에서 인식의 차이에 따라 기준이 다르겠지만, 이순신의 정신은 줄곧 전자에 있었다고 할 것이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도 인격수양자는 경중을 헤아리고 선후를 가리는 기준이 거의 같다. 물론 개인주의가 팽배한 자본사회에서는 물질이 중요시되지만, 이것이 결코 도덕적인 결핍성마저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요컨대 윤리 의식이 예나 이제나 항상 인간의 삶에 척도가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시대를 관통하는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선후의 기준은 인간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물론, 개인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항상 암구명촉(暗衢明燭)이 되어 줄 것이다.

   핵심어 : 선후의 기준, 근본적인 문제, 윤리의식, 척도

  

   글 : 노승석 이순신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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