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헌법재판소가 드디어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동본혼인금지, 간통죄, 호주제 등과 비슷한 문제 해결의 궤적을 그리고 있어 답답한 심정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나 낙태죄 등은 찬반론이 뚜렷하고 개인의 권리 침해도 심각한 문제이다. 공동체의 의사형성은 입법부인 국회가 하는 것이 타당하다. ‘헌법 조항을 보면 법률로 정한다.’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라는 문구를 다수 찾아 볼 수 있다. 헌법 조항은 공동체의 기본방향을 정하고 있으나 낙태허용여부와 같은 문제를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면서 여러 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입법자가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는 찬반론이 뚜렷한 문제에 대해 의사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동본혼인금지, 간통죄, 호주제가 그랬고 낙태죄가 그랬다. 일종의 직무유기인 셈이다. 국회의원들은 소수자라도 강력한 반대세력이 있으면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한 표라도 잃게 될 것을 두려워 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문제를 헌법재판소에게 모두 미루고 헌법에서 준 권한을 행사를 하지 않으려 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직접 국민의 선거로 선출되지 않으므로 민주적 정당성이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다. 국민들이 잘못된 재판에 대해 통제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공동체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할 사항에 대해 우선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국회가 1차적 결정권을 회피하는 바람에 헌법재판소가 공동체의 방향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낙태죄는 갑자기 불거진 문제도 아니고 오랫동안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을 위협했던 골칫거리였다. 국회는 종교계의 반발을 두려워해 문제가 아닌 것처럼 외면해왔다. 주요 정당도 낙태죄 존속에 대한 입장표명을 두려워했다. 양심적 병역거부, 호주제나 동성동본혼인금지는 위헌성이 명백했음에도 국회는 끝까지 방치했고 헌법재판소가 어쩔 수 없이 헌법불합치 결정하면 그때서야 해결책을 찾곤 했다. 시대의 흐름과 헌법 정신의 변화에 따라 더 이상의 존치해서는 안 되는 제도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 그냥 두면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게 되고, 나중에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더라도 그 피해를 회복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한 여성의 인생에 털끝하나 관심 없는 이들이 낙태 문제가 나오면 생명권을 앞세워 낙태를 살인인 것처럼 목소리 높이고는 막상 원하지 않은 출산을 하면 희한한 단어를 만들어 비난해 왔다. 사생아, 혼외자, 미혼모와 같은 단어를 써서 비정상인 출산과 비난할 만한 여성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 단어가 버젓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다. 출산을 하면 경제적 어려움은 제쳐두더라도 주홍글씨처럼 평생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면서 낙태는 금지하는 모순이 낙태문제를 지배해왔다.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이 나온 것은 다행이다. 국회의원들과 정당들은 무슨 일을 했는지 되돌아보며, 심히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황남기 교수

제 27회 외무 고등고시 수석합격

(전) 외교부 서기관

(전) 동국대 법대 겸임교수

(현) 황스파 헌법 / 행정법 대표교수

노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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