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금질된 화가의 예술적 완숙함이 생명의 현상으로 응축되다

박다원 작가의 'Now Here' 전이 10월 15일부터 11월 11일까지 한남동 갤러리조은에서 진행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 간단하게 그어진 선 하나가 가슴으로 파고들며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캔버스 중앙을 과감하게 가로질러 단순명료하게 그어진 선들이 군더더기 없는 형태와 선명한 색으로 보는 이의 감정선을 건드리며 공명한다.

작품의 메시지를 알기도 전에 거대한 붓의 두툼하고 섬세한 필치가 관객의 내면에 먼저 와 닿는다. 일필휘지로 단숨에 그려나간 작가의 붓질이 생명의 형상으로 응축된 작품, 작가의 긴 호흡이 화면에 남으며 무한한 생명의 기운이 반복된다.

박다원의 회화는 모든 것은 점과 선에서 시작한다는 문인화의 근본사상과 닮아 있다. 중요한 것은 박다원의 회화는 서구적 관점의 기하학적 추상화가 아니라 명상과 자기극복의 훈련으로써의 회화라는 점, 아시아 예술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박다원의 회화는 서체와 그림이 하나되는 문인화처럼 일필휘지 기운생동이 느껴진다. 

작가의 작품은 사전에 의도된 조형적 구성에 의해 진행되기 보다는, 우연의 필치가 필연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정신성에 의한 독자적인 조형성을 지향한다. 우연과 필연의 공존, 그리고 자유로움과 자제력의 동시 작용은 궁극적으로 마치 생명현상으로 무한 반복하는 우리의 삶과 역사처럼 화면에서 생동감과 물성의 에너지를 나타내며, 나아가 전 화면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힘을 자아낸다.

이처럼 박다원 작가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생명력의 근원인 빛과 우주 만물의 본질을 점, 선, 공간으로 시각화한다. 다양한 색의 바탕 위에 그어진 지극히 절제된 한 획은 관람자로 하여금 조용한 마음 속 울림과 공명을 경험하게 한다.

박다원 작가의 작품에서는 인내심과 마음을 내려놓은, 오랜 시간 담금질된 화가의 예술적 완숙함이 가감 없이 보여진다.  

전시에서는 적색, 청색, 다홍색 등 다양한 색의 화폭에 일필휘지의 선으로 에너지를 응축시킨 'Becoming' 시리즈 신작 외 작가의 대표작인 'Now Here' 시리즈 등 25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 세계에 대해 박다원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삶을 돌아보면 지난 10년의 시간도 우주의 긴 역사도 한 줄의 글로 기록된다. 우리의 시간은 우리가 만든 약속일뿐이다. 우리가 인지하는 것은 늘 지금 여기(Now Here)이다"며 "나는 순간이며, 시공간이 연속된 여기(Now Here) 한 획의 점과 선으로 몰입한다. 이 시공간은 우리의 삶, 역사, Everything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문인화처럼 그의 회화에 있어서 붓질과 비워진 공간, ‘여백’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몸과 마음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가 되고 명상의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순수 에너지를 한 획으로 표현한다. 그의 여백은 무한한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특히 기운생동하는 붓질이 명상과 치유를 넘어 에너지를 생성하며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작품 속 에너지는 그 장소를 떠나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에게 각인되어 여운으로 남는다. 그의 붓질이 여백을 공명시키며 공간과 우리를 공명하게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캔버스는 박다원이 세상을 마주하는 무한 공간이다. 화면에서 세상과의 만남을 추구하며 극도로 명상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박다원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깨어있는 정신으로의 삶을 만나라"고 전하고 있다.

조남욱 기자
저작권자 © 데일리그리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