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윙클피부과 김민선원장의 진료실 Episode

어느 날 늦은 오후 친구 K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진료실로 들어섰다. “며칠 전부터 또 시작 되었어···. 가려워서 어제 한숨도 못 잤지 뭐야···.”라고 말하며 연신 팔과 허벅지 언저리를 긁어대기 시작했다.
K는 나와 친한 친구이지만 여간해서는 내 병원을 찾지 않는다. 항상 밖에서 약속을 잡아 만나곤 하는 그녀가 병원을 방문하는 시기는 해마다 환절기인 3~4월하고 9~10월 즈음이다. “힘들었겠다. 어디보자” 환부를 살펴보고 짧게 내복약과 근육주사를 처방하고 간단한 광선치료도 함께 시행했다. “한결 나아졌어. 살 것 같다”하는 친구에게 “제발 그렇게 벅벅 긁지 좀 마. 가렵기 시작하면 곧장 좀 들르던지” 나는 늘 하던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K는 피부건조증과 건선으로 벌써 몇 년 간 이렇게 환절기마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원래 건조한 피부였기도 하지만 특별히 다른 질환도 없는데도 해마다 증상과 환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양상이다. 이건 아마도 그녀의 생활방식 중 절대 포기하지 않는 몇 가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실 어제 동네 친구들이랑 사우나에서 땀 좀 쫙 빼고 맥주 한잔 했거든, 그래서인지 밤에 더 가려운 것이 더 심해지는데 아주 죽겠더라”
아, 그렇다. 그녀는 주말이면 사우나와 맥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낙으로 사는 직장인이다. ‘아마 둘 다 포기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군’이라고 생각하며 처방전을 건네주고 미리 포장해두고 깜빡했던 뒤늦은 생일선물을 건넨다. “바디로션 다 썼어? 이번에는 다른 제품으로 보습력이 좀 더 좋은 것으로 골랐으니 열심히 써. 제발~! 아참, 요새 가습기는 틀고 있어? 저녁엔 좀 틀고 자고. 그리고 가습기는 자주 청소해 줘야한다. 알지? 그리고 피부 관리 받으란 말 안 할테니 얼굴 수분크림 충분히 좀 쓰고. 너 물은 하루에 얼마나 마시고 있어? 조금씩 수시로 마셔, 화장실 가기 귀찮다는 핑계 대지 말고~ 좀···. 환절기에는 피부건조 증 심해지니까 사우나 가지 말랬잖아~ 진짜 말 안듣네~ 너 가더라도 때 밀고 그러는 건 절대 안된다~ 응?” 이렇게 한 번 시작한 잔소리는 좀처럼  멈출 수가 없다.

“크큭, 알았어. 알았어. 명심할께요 선생님~ 그런데 있잖아, 당분간 금주해야 하는 건 아는데 말이야, 그게 쉽지가 않네. 요즘 하늘도 너무 좋고, 날씨도 적당히 선선하고, 이제 정말 가을인가 봐. 게다가 재밌는 건 뭔 줄 알아? 요즘 연락 오는 남자들이 많아졌어. 남자들이 가을타는 거 알지?” “진짜야? 날씨 따라 그런 변화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 꽤 흥미로운 걸?”
“응. 정말이야~ 나도 신기할 지경이라니까. 그리고 조만간 시간 내라. 가을은 대하랑 전어 철 인거 알지? 노량진 가서 회 떠서 대하구이 먹자. 가을이잖아. 콜?”

여태 잔소리를 하던 나는 해맑게 신이나 있는 K의 얼굴을 보며 피식하고 웃고 만다. 저녁에 소개팅이 있다며 서둘러 나가는 K를 배웅하고서는 진료실 블라인드를 걷어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가을 하늘이 정말 높고 푸르구나. ‘천고마비’의 계절. 문득, 사뭇 진지하게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선 또 한 번 피식 웃는다. 그대로 창문을 열어두고 병원 대기실 음악을 인디밴드 ‘가을방학’의 CD로 바꿔 넣는다. 가을방학의 음악이 잘 어울리는 여름과 겨울사이의 경계선 같은 짧은 한줄기 청량한 바람 같은 계절. 친구 K를 비롯하여 많은 환자들의 알레르기 질환들이 심해지는 환절기의 계절. 가을이다.

▲ 트윙클 피부과 김민선 원장

 

 

 

 

 

 

현재 강남 논현역 근처 트윙클 피부과를 운영하고 있는 원장
웹툰과 추리소설, 인디음악과 스릴러영화를 좋아하고 착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에게 더 친절해지고 싶은 정 많고 평범한 의사

김민선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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