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을 정확히 이해하자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 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한자문화권에 속하였으므로 언어를 전달하거나 표기하는 데 주로 한문이 사용되어 왔다. 이로 인해 현재 남아 있는 많은 옛 기록물들은 대부분 난해한 한문으로 되어 있다. 오늘날 정보화 시대에 고전의 현대화를 위한 노력으로, 현재 한글 번역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문의 특성상 한문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십여년 이상 유교경전 공부를 해야 한다. 더욱이 몇 십년 공부를 해도 해석에 막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한문은 해도해도 어려운 공부임에는 틀림없다.

  충무공 이순신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기에 우리의 의식 속에 항상 가까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에게 친근함을 느낄 정도로 익숙해져 있지만, 그에 대한 기록물은 난해한 한문으로 되어 있다. 현대인들이 이순신을 연구하는 데도 역시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다. 한 인물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에 대한 원전연구에 충실해야 한다.

  이순신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난중일기』와 『임진장초』는 물론, 이를 포함한 『충무공전서』가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순신은 유교 경전(經典)과 역사서 및 병서(兵書)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 난중일기를 작성한 것만 보아도 그의 문장력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당시에 이순신도 상당한 기간 동안 글공부를 통해 한문지식을 쌓았던 것이다.

  예로, 난중일기에는 문서에 대한 다양한 용어들이 나온다. 백성들이 소지(所志) 등의 민원을 신청하면, 이순신은 이에 대한 판결문으로 제사(題辭)를 작성하여 발송하였다. 이를 뎨김(題音)이라고도 한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돌리는 통문(通文)도 있다. 하급관청을 상대로 발송하는 감결(甘結)이나 관문(關文, 關子)이 있다. 또 이첩(移牒)이라는 말도 자주 보이는데, 한번 받은 문서를 다른 곳에 재공지하는 것이다. 물품에 대한 영수증이나 증명서를 뜻하는 첩자(帖子), 체지(帖紙)가 있다. 중앙관리가 지방에 출장할 때 알리는 사전통보문인 선문(先文)이라는 것도 있다. 이처럼 그 당시에 사용한 문서이름이 자주 나오는데, 이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고전 용어들을 많이 알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고전을 한글로 번역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최근 들어 이순신에 관한 책들이 우후죽순 많이 나오고 있다. 난중일기 한권만 번역하는데도 십 여 년이 걸리는데, 고전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그처럼 쉽게 낼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남의 독창적인 연구 성과를 인용할 때는 매우 주의가 요망된다. 반드시 각주에 출처를 명시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운 일이다.

  요즘은 문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보니 문제가 있어도 미사여구(美辭麗句)로 포장하면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원문을 검토해보면 바로 확인이 된다. 때문에 고전연구는 원전에 충실해야 한다. 난중일기에서 오독한 한 사례로, 원전에 충실했다면 이순신이 “눈길에 오르지 못했다”를 “곤하게 잤다”로 엉뚱하게 해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순신의 정신과 업적을 후대에 올바로 전하기 위해서라도 원전에 충실히 임하는 자세부터 가져야 한다. 『중용』에 “분별하지 않을지언정, 분별하려고 하면 밝혀내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아야 한다[有弗辨 辨之 弗明 弗措也].”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자신이 없으면 손을 대지 말고, 손을 댓으면 끝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순신의 리더십(노승석 저, 여해 2014) 참고인용.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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