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양심

  글: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나는 오래전부터 고전번역을 해왔다. 다양한 옛 문헌들을 해독하는데 특히 선행 연구물이 있을 경우에는 매우 주의하게 된다. 기존 내용의 시비를 정확히 판별하여 고증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문화재청 주관 하에 추진된 문화재 정본사업에서 난중일기와 임진장초 및 서간첩에 대한 새로운 해독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를 계기로『충무공전서』본 난중일기와『난중일기초』의 오류를 바로잡아 난중일기를 완역하였다.

  2008년 4월에는『충무공유사』를 해독하여 새로운 난중일기 32일치를 발굴하고, 후대의 이본을 종합정리하여 정본화된 난중일기 원문을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새롭게 번역되어 나온 것이『교감완역 난중일기』이다. 그런데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선행연구된 내용들을 일일이 각주에 달아 출처를 밝혔다. 원문에 달린 각주만해도 무려 2천여 개나 된다. 이 책이 나온 뒤로 대중들이 원문과 번역문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순신관련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신기하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하여 일일이 검토해보았다. 그런데 개중에는 선행 연구자의 번역문을 짜깁기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역사상 대표적인 위인의 책을 낸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처럼 책을 낼 수 있을까. 더 놀라운 것은, 북한학자 홍기문이 난중일기를 최초로 번역했다는 사실을 숨긴다는 것이다. 실제 난중일기의 원조는 홍기문의 번역이고, 이것이 후대의 난중일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선행번역의 오역부분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많은 책들에 그대로 옮겨진 점도 문제다. 난중일기가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희소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등재 된 지금의 시점에서, 난중일기 번역의 역사를 돌아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대관절 남의 글을 인용할 때는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가. 물론 어느 누가 해석하든지 동일하게 나올 수 있는 평서형 문장에 대해서는 문제 삼기가 어렵다. 다만 남의 독창적인 글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명시해야 한다. 대부분이 서문이나 참고문헌에 이름과 서명을 밝히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저작권 전문가에게 들으니, 타인의 독창적인 내용을 인용할 때는 합리적으로 인정되는 방법의 하나로, 해당 지문에 각주를 통해 출처를 명시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작권 침해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 이순신관련 책을 집필하는 이들이 선행연구서를 많이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선행연구를 밝혀야 하는 윤리적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도덕성이 결핍되어 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병폐가 연구자들의 양심마저 변질시키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국내에 이순신관련 문헌을 제대로 연구하는 전문기관이 없는 현실에서 이런 문제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가 더욱 어렵다. 요즈음 이순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이순신연구에 폐해를 끼치는 현실이 매우 개탄스럽다.

  이순신의 업적을 제대로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역사적인 위인에 대한 도리가 아니며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것이다. 설사 당장은 눈속임이 될지는 몰라도 영구히 남는 기록물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다. 중국 남조(南朝)시대 유협(劉勰)은『문심조룡(文心雕龍)․지하(指瑕)편』에서, “남의 아름다운 글을 빼앗아 와서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 해도 보옥(寶玉, 하후씨의 황(璜))과 대궁(大弓, 봉부씨의 명궁(名弓))은 끝내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 일부 표절하는 것은 남의 주머니를 뒤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남의 글을 가지고 아무리 단장취의(斷章取義) 할지라도 본바탕은 남의 글인 것이다. 원저자의 승낙도 없이 일정내용을 발췌하거나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이러한 실상에 대해 정부당국은 물론, 학계에서 관심을 기울여 학자들이 마음 편하게 연구하도록 해야 한다. 요컨대 기존의 저작권법을 더욱 강화하여 작가의 고유한 창작품이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함을 사회에 고언하는 바이다.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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