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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이순신 전적유물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밝히다

노승석의 이순신의 窓

여해고전연구소장 | 고전 및 초서전문가, 이순신연구가. 국내 최초 난중일기를 교감 완역했고, 2013년 유네스코 ...

[기획취재]이순신 전적유물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밝히다
  • 노승석
  • 승인 2020.05.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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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글, 영정, 난중일기 내용
사진 문화재청 소장
사진 문화재청 소장 ©

 

1.  《난중일기》와 《서간첩》 이외 또다른 이순신의 작품이 존재하는가?

  후대에는 이순신이 직접 작성한 《난중일기》와 《서간첩》(국보 76호)이외에 이순신의 글씨라는 편지들이 매우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중에는 추정작품도 꽤 있지만 대부분이 가짜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감정 의뢰를 받은 것만도 80여 건에 달한다. 특히 일정시대에 위작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오래된 장지(狀紙)에 친필을 모사하거나 유사한 필체로 내용을 만들어 쓴 것들이다. 이순신 유물하면 상당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이 위조한 것이다. 일반인들이 봐서는 친필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울정도로 교묘하게 조작되었다.

  그러나 고문헌 전문가들은 이를 정확히 판별할 수 있는데, 위작은 분명한 허점이 있다. 이때 《난중일기》와 《서간첩》이 진위를 판단하는데 항상 기준이 된다. 특히 지금까지 전하는 이순신의 대표적인 진본 편지로는 《서간첩》에 들어 있는 7통의 편지이다. 즉, 조카 이회(李薈)에게 보낸 편지 1통, 인척관계인 현건(玄健)에게 보낸 편지 3통, 현덕승(玄德升)에게 보낸 편지 3통이다. 이 편지작품에서 나타난 글씨의 형태와 내용, 서식 등을 볼 때 전문가들은 진본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다만 편지에 “이순신(李舜臣)”이라는 성명을 표기한 것은 특이한 점이다. 이와 다르게 위작의 경우는 임란시기의 서풍(書風)과 다른 서체로 작성되거나 내용상의 오류가 있고, 종이의 색상과 밀도가 다르다.

 

 

2. 이순신의 진본 초상화가 존재하는가?

  “이순신의 사람됨이 말과 웃음이 적고 용모가 바르고 근엄하여 마치 수양하고 근신하는 선비와 같았다.” - 유성룡, 《징비록》 -

후대에는 이 내용을 근거하여 이순신은 선비처럼 단아한 인상을 가진 인물로 상상하게 되었다. 물론 정조 때 이순신의 문집인 《이충무공전서》가 간행되기 전까지는 이순신의 영정이 없었거나 있어도 공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왜냐면 그때 이순신의 영정이 알려졌다면 당연히 그 문집에 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중기에 그려진 이순신의 초상화는 심중식, 최우석, 이상범, 성재휴, 김은호, 장우성, 정형모 등에 의해 그려졌는데, 이는 비록 상상에 의해 그린 것이지만 이순신 후손들의 관상에서 얼굴의 공통점을 찾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후대의 모사본과 해외 소재한 초상화를 합하면 대략 18종이다. 그러함에도 세간에는 이들이 그린 초상화가 실물 또는 진본과 어느 정도 유사한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바로 초상화를 그릴 때 표본이 없이 상상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세간에는 이러한 논란과 관심이 지대하지만, 정작 표본이 되는 진본류의 초상화를 찾으려는 노력은 매우 저조하다. 지금까지 형식에만 치중하고 진정성 없는 모방주의에만 급급해왔던 것이 현실이다. 세간에는 이순신의 가장 오래된 진본 영정이 존재했다는 풍문만이 자자한 상황인데 무엇보다 표본이 될만한 초상화를 찾는 일이 시급하다.

 

3. 《난중일기》에 위작 내용이 있는가.

  최근에 《난중일기》 중 일부 내용에 대해 가짜일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한 경우가 간혹 있었다. 하지만, 이는 고문헌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사견일 뿐이고, 정통으로 고전과 고문서를 연구한 학자들 간에는 이에 대한 의문이나 논란이 전혀 없었다. 그들이 무엇보다 가짜라고 보는 중요한 이유로는, 일부 내용이 서체가 다른 점, 수정 내용이 있는 점, 본자와 다른 글자로 쓴 점 등이다. 이 이유가 타당한 것일까.

  붓으로 글씨를 쓸 때는 동일인이 쓰더라도 붓과 종이 및 건강 상태에 따라 글씨의 형태가 다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필체와 운필의 형태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필사본류는 필기할 때 쓰다가 잘못 쓰면 다시 쓰고 줄을 바꾸고[改行], 간혹 상하 이동부호를 붙여 글자의 수정을 표시하기도 하며, 같은 글자를 반복해서 쓸 경우 뒤의 글자는 본자와 통하는 다른 이체자를 사용하기 한다. 이러한 필기방식은 관행적으로 사용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논란과 의심의 여지는 없는 것이다.

  이상으로 항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이순신 전적유물과 관련한 진위문제를 살펴보았다. 먼저 진위를 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랜 경력을 쌓은 전문가의 정확한 연구와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철저한 검증 없이 문제를 지적한다면 근본적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것이다. 필자가 그동안 연구 조사한 것들을 보면, 세간에 이슈화된 내용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다. 이순신에 관한 것들은 개인의 연구차원을 넘어 국가차원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진위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데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글 :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순신연구가, 초서/고전전문가)

    역서 : 《교감완역 난중일기》 개정2판(여해 2019)

            《난중일기 유적편》(여해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