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영사 연구는 챈들러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이야기되곤 한다. 그의 방법론을 따르건 따르지 않건, 혹은 그의 가설이나 명제를 수용하건 하지 않건, 챈들러 이후 모든 경영사 연구는 ≪보이는 손≫을 거론하지 않고서는 논의를 전개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 경영사의 주요 사건과 사례들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포괄적 이론의 틀을 제시한다. 이 책은 두 권으로 나누어 출간했으며, 그중 1권은 제1부에서 제3부까지를 수록했다.

미국에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근대적 대기업(modern business enterprise)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부는 대기업이 등장하기 전, 즉 대략 1790년부터 1840년까지 미국의 경제 상황과 기업 활동을 개괄하고 있다. 제2부는 철도 기업의 발전을 다룬다. 제3부에서는 철도 및 전신으로 구축된 전국적 통합 시장이 대량 유통과 대량 생산, 즉 대기업에 의한 유통과 생산을 가져오는 과정을 보여 준다.

제4부에서는 대량 유통과 대량 생산을 통합해 수행하는 복수사업단위 기업(multiunit business enterprise)이 등장하며 진정한 의미의 근대적 대기업이 성립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마지막 제5부는 근대적 대기업의 내부 조직을 다룬다.

이 책의 번역이 우리나라 학계나 일반 독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점을 몇 가지 열거한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대기업이라는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다. 지난 20∼30년 동안 IT 산업의 등장과 같은 환경 변화로 새로운 형태의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챈들러가 이야기한 대기업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새로운 형태의 기업 조직은 맹아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 전 세계 경제의 중심은 여전히 대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담고 있는 이론적 틀과 풍부한 사례들은 대기업, 나아가 오늘날의 경제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많은 정보와 시사점을 제공한다.

둘째, 우리나라 경영사 연구의 발전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경영사 관련 책들이나 논문들 중 적지 않은 것이 대기업의 성장과 진화 과정에 대한 깊은 분석까지 나아가지 못한 채, 연혁을 나열하거나 몇몇 에피소드에 근거해서 성과만을 제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챈들러는 대기업이라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경영사 연구가 갖추어야 할 하나의 전범을 제시한다.

셋째, 제도경제학적 분석의 확산이다. 경제학계, 나아가 사회과학 일반에서는 시장과 제도 간의 대체 관계가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틀이라는 관점에서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신제도주의(new institutionalism)’적 접근이 새로운 분석 방식으로 대두했다. 이 책도 그러한 새로운 방식으로 대기업이라는 생산 제도의 등장을 설명해 신제도주의적 방법의 기초를 닦았다.

마지막으로 미국 사회와 경제의 변천에 대한 이해다.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미국의 역사를 소개하는 많은 저서와 역서가 발간되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성장하고 변화해 온 큰 줄기를 보여 주는 저작은 쉽게 만나기 어려웠다. 이 책이 미국 경제사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 조금이나마 더 균형 잡힌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바는 경제 활동의 조율과 자원 배분에서 근대적 대기업이 시장 메커니즘을 대신했다는 것이다. 경제의 많은 영역에서 경영이라는 보이는 손(the visible hand)이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이라고 지칭했던 시장의 힘을 대체했다.

지은이 앨프리드 챈들러(Alfred D. Chandler, Jr., 1918~2007)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근무하던 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5세경에 미국으로 돌아와서 미국 동부에서 초, 중등학교를 다닌 뒤 하버드대학을 졸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5년간 해군으로 복무했고, 그 후 하버드대학에서 1952년에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MIT(1950∼1963년), 존스홉킨스대학(1963∼1971년)에서 교수로 재직한 뒤, 이후 2007년에 사망할 때까지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연구와 강의를 수행했다.

경영사 분야에서 탁월한 논문과 저서를 많이 남겼는데, 그 가운데서도 챈들러의 3부작으로 일컬어지는 ≪전략과 구조(Strategy and Structure)≫(1962), ≪보이는 손(The Visible Hand)≫(1977), ≪규모와 범위(Scale and Scope)≫(1990)가 특히 유명하다. 이 중 ≪전략과 구조≫는 토머스 뉴코멘 상을, ≪보이는 손≫은 토머스 뉴코멘 상, 퓰리처 상, 그리고 밴크로프트 상을 받았다.

이 밖에도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을 출간한 ≪헨리 바넘 푸어(Henry Varnum Poor: Business Editor, Analyst and Reformer)≫(1956), ≪피에르 듀폰과 근대적 대기업의 형성(Pierre S. du Pont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Corporation)≫(1971), ≪전자 세기의 창출(Inventing the Electronic Century)≫(2005)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전문 학술지에 많은 논문들을 게재했다.

임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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