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독방법

   이순신이 직접 쓴 친필 초고《난중일기》전편은 모두 전쟁 중에 작성된 비망기록이다. 작전 상황에 따른 업무일지처럼 그날그날의 있었던 일들이 최고 지휘관에 의해 집필된 것이다. 치열한 전투를 치른 때일수록 필기상태가 알아보기 어렵게 심한 흘림체로 적혀 있고, 문장형태에도 삭제와 수정이 반복되어 있다. 특히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특히 날짜와 날씨, 기후 등이 항상 분명하게 적혀 있다. 이는 아마도전쟁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급박한 전쟁 상황에서 빠르고 신속한 속기방법을 선택하여 효율적으로 일기를 작성하였다. 마치 암호와도 같은 한문의 기호체계로서 진중의 일들을 낱낱이 기록화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와 같은 형태의 글씨들에도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 년이 지난 후대에도 해독이 가능한 것이다. 얼핏 보면 한 개인이 마음대로 휘갈겨 쓴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정자체보다도 더 정성을 들인 필흔을 엿볼 수가 있다. 이 점이 참으로 놀라운 점이다.

  《난중일기》의 표기방식에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한자의 음이 서로 비슷하거나 자형이 비슷한 경우에 두 글자를 호용한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한 이유는 필기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도록 편리를 도모한 것이다. 주로 많은 획으로 된 글자를 간단한 획의 동음글자로 사용한데서 확인되었다. 예로, 오양역(烏壤驛)에서 ‘땅 양(壤)’자를 ‘날릴 양(揚)’자로 사용하고, 해평장(海坪場)의 ‘평평할 평(坪)’자를 좌변을 없앤 ‘화평할 평(平)’자로 사용하였고, 송덕일(宋德馹)의 ‘역말 일(馹)’자를 ‘한 일(一)’자로 사용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불필요한 획을 더하여 사용한 경우도 있다. 공문과 관련된 용어인 유지(有旨)를 유지(宥旨)로 사용한 것이다. 유지(有旨)는 임금의 특별한 명령서이고, 유지(宥旨)는 죄인에 대한 사면서이다. 또한 알기 쉬운 동음의 글자로 표기한 경우도 있는데, “송전(宋荃)”을 “송전(宋銓)”으로 표기한 것이다. 또 글자를 착각하여 오기한 경우도 있는데 “한산도(閑山島)”를 “한산도(韓山島)”로 적은 경우이다. 이와 같은 예는 비단 명칭뿐만이 아니라 문장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임진년 5월 19일자의 “직지동처(直指同處)”에서 도착할 예(詣)(완료형)자를 향할 지(指)(미래형)자로 차용한 예도 있다. 이처럼 쓰인 경우에는 대부분 미상의 명칭이 되거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도무지 글자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흘려진 경우도 있었다. 이로 인해 후대의 판본에 오독된 글자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면 인명과 지명에서 “부산(釜山)”을 “애산(厓山)”으로, “흔전자(欣田子)”를 “기전자(頎田子)”로, “내산월(萊山月)”을 “세산월(歲山月)”로 오독한 사례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해독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층적인 분석과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즉, 정밀한 서체분석과 전후의 문맥분석, 그리고 문헌 고증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점들을 실제 적용하여《난중일기》를 해독하였다. 그 방법에 있어서 먼저 초고본《난중일기》와 전서본,《난중일기초》등 이본(異本)류와의 차이점을 원문에 일일이 밝히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난중일기》의 총 8책인《임진일기》부터《무술일기》까지의 본문내용들을 상호 비교하는 작업을 하였다. 이와 함께 또한 이순신과《난중일기》에 관계된 임란사료와 역사문헌으로 고증하는 방법을 병행하였다. 이 세 가지 방법으로도 해독상의 문제해결이 안될 경우 문장의 전후 문맥을 짚어 정오를 가려내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판독과정을 거친 후 비로소 교감본《난중일기》원문과 번역서가 나오게 된 것이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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