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이란 세월이 주는 무게감은 느끼는 대상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어서 객관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순 없다.

그렇지만 척박한 국내 소프트웨어 환경에서 특정 기업이 15년 동안 사업을 꾸준히 영위해 왔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일단 “놀랍다”는 서술어를 먼저 쓰는 편이 옳겠다.

왜냐하면 신생기업, 혹은 중소기업이 15년이란 시간을 이어 사업을 해왔다면, 투자금 부족, 뜻하지 않은 경기의 후퇴, 초기 맴버의 이탈, 시장에 대한 판단 미스 등과 같은 역경을 넘고 또 넘어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고의 세월을 버텨 이달 창립 15주년을 맞은 지란지교소프트의 오치영 사장(사진)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뿌듯하다”는 짤막한 답을 주었다.

“젊은 시절 열정을 갖고 사업을 시작한 나와 동료들의 모습이 뿌듯했고, 벤처 거품이 꺼질 때 IT산업 전반에 몰아친 불황을 잘 극복했던 시절이 뿌듯했다. 그리고 지난해 찾아온 미국발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뿌듯하다.”

창업 당시의 모습이 우선 궁금하다고 물었더니,

“4명의 직원이 뜻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 첫해 매출을 1천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매출은 형편 없었지만, 직원들이 일에 대한 열정을 갖고 일했다.”

“이런 열정은 구체적인 매출로 이어져, 사업 시작 초기엔 어떤 해엔 2배, 어떤 해엔 3배의 매출 신장을 가져왔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직원들이 보여준 일에 대한 열정과 성과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이처럼 빠른 수익 확대를 창출한 지란지교는 번 돈을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런 행위 또한 일과 성과에 대한 열정이었다고 오 사장은 설명했다.

“수익금을 지출하는 것보단 투자하는데 관심을 더 가졌다. 새로운 솔루션과 서비스를 개발했고, 이런 것들이 회사의 미래를 밝혀줄 장기 투자라는 소중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오 사장의 이런 기대를 무참히 허문 사건이 터지고야 만다. 2002년 월드컵 이후에 찾아온 벤처 거품의 붕괴는 지란지교에게도 형언할 수 없는 인고의 세월이 됐다.

벤처 붐 시절에 돈이 IT로 “막” 몰리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엔 회사이름에 무슨 “IT”, 무슨 “소프트”, 무슨 “네트워크” 만 붙어 있어도 투자금이 여기저기서 들어왔다.

김대중 정부의 IT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시장도 활황이었다. 그러나 월드컵 이후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고객들의 IT투자가 줄어 들었고, 당연히 물건도 덜 팔렸다. 쉽게 말하면 돈이 안 벌렸다. 유동성 위기에도 몰렸다.”

이처럼 커다란 위기를 맞은 오 사장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기도 하고, 평소 알던 지인을 찾아 부지런히 논의도 했다. 그런 끝에,  ‘내실경영’으로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결론이 섰다.

“당장 현금 흐름을 가져다 주지 않는 사업들은 모두 정리했다. 회사 성과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경비 지출은 모두 끊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픈 기억은, 동거동락 했던 직원들을 해고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경영자로서 몹시 견디기 힘든 결단이었다. 그 당시 직원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아직도 심중에 켜켜이 남아 있다.”

이렇게 마른 수건을 짜는 심정으로 비용을 ‘줄이고’ 또 ‘줄여’ 회사를 겨우 정상 궤도에 올려 놓을 수 있었다고 밝힌 오 사장은 그 시점에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초심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일에 대한 열정”이라는 답을 주었다.

“처음에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 중, 열정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아야겠다. 열정이란 일을 단순히 열심히 한다는 개념은 아닐 것이다. 어떤 목표의식을 갖고 일로매진(一路邁進)하는 일에 대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이 밝힌 오 사장은 열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를 갖는다고 했다.

“열정을 갖고 일을 하면,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는 것에 도움을 될 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해 회사의 미래 비전을 발굴할 수 있다. 이 시절 임직원들과 열정을 공유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이런 열정은 스팸 차단 솔루션인 ‘스팸스나이퍼’ 란 성과물을 지란지교에게 안겨주었다. 이 솔루션은 지란지교가 지난 시절의 영화를 회복하고, 회사를 다시 성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아웃룩에서 스팸을 대충 걸러 내면 된다는, 기업의 스팸 관리의 인식을 스팸스나이퍼는 확 바꿔버렸다.

“이 솔루션을 적용한 기업들은 직원들이 스팸을 확인하고 지우는데 시간을 일하는데 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스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길을 터주었다.”

“당연히 기업들의 반응이 좋았다.” 다양한 장점을 가진 스팸스나이퍼에 대한 매출은 해마다 성장했고, 지금도 이 회사 매출의 40%를 가량 점하며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스팸스나이퍼에 대한 오 사장의 감상은 이렇다. “스팸스나이퍼는 어려운 때 회사를 살리고 성장시킨 매우 고마운 제품이다. 또한 스팸스나이퍼를 탄생시킨 어쩌면 당시엔 생명줄과 같았던 ‘열정’을 잃지 않으려고 지금도 부단히 애를 쓴다.”

닷컴붕괴 시절의 어려웠지만 뜻 깊었던 경험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지난해부터 국내 IT업계에 몰아친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데 단단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고 오 사장은 말했다.

“경기가 어렵다지만, 지난해보다 오히려 올해 매출이 더 성장할 것으로 본다. 특히 수출 현황이 좋아 일본에서 올해엔 지난해 대비 2배의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끝으로 들어봤다.

“지금까지는 스팸 차단에 관심을 두고 사업을 해왔다면, 향후엔 메일보안 사업을 강화할 것이다. 메일 아카이빙, 메일 스크린 솔루션을 개발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다.”

“또한 기존 제품의 완성도를 높여 해외 시장 개척에 보다 적극 나설 것이며, 종래의 사업이 B2B에 중점을 뒀다면, 향후엔 B2C 사업도 적극 육성할 방침이다.”

15년 동안 회사를 쉬지 않고 이끌었으면 충전할 시간이 필요한 것도 같다며 던진 질문엔 “아직은 할 일이 더 많다”라는 답을 주었다.

다만 오 사장은 개인적인 소망은 이렇다.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왔다. 회사가 20주년이 되는 해엔 경영일선에서 잠시 손을 놓고, 나만의 여유를 갖고 싶다. 공부도 좀 더 하고 싶고, 생각의 폭도 키우면서 인생의 후반전을 차분히 준비해야겠다.”

한정된 시간을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갖고 싶어하는 인생의 짤막한 “여유”를 그가 꼭 갖길 바란다.

그리고 인생의 전반전을 뿌듯하게 느낀 것처럼,  나머지 후반전도 그에게 의미 있는 삶이 되길 진심으로 희망해본다.

<데일리그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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