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자세

    올해는 명량해전이 일어났던 정유(丁酉)년을 420년 만에 맞은 7갑주년의 해이다. 그래서 정유년의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이 ‘丁酉’를 주역 상수학에서는 뇌택귀매(雷澤歸妹䷵)로 풀이한다. 주역 괘효가 6효로 되어 있으므로 이 정유의 숫자를 6으로 나누면 2가 남으니 두 번째 효인 구이(九二)가 동했다고 한다. 이 괘효의 점사로써 괘풀이를 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뇌택귀매괘의 구이(九二)는 “애꾸눈이 보는 것이니 은자처럼 바르게 해야 이롭다[眇能視 利幽人之貞]”고 했다. 구이의 자리를 보면 가운데 자리에서 중(中)을 얻고 육오(六五)와 호응하여 힘이 있지만, 육삼(六三)과 구사(九四)에 밀려 선봉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은자처럼 해야 이롭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구이는 가운데 자리에서 이미 현명한 덕성을 갖추고 있다. 체호괘 역시 밝은 이화로써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직 자신의 내실을 다지는 데 힘써야 하니 섣불리 아는 체하다가는 화를 당할 상인 것이다. 때문에 한결같은 초심으로 수양하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이로운 것이다.

   이 괘에 대하여 송나라 학자 정이(程頤)는《정전(程傳)》에서 “애꾸눈은 멀리 볼 수 없다.”고 했으니, 이는 고요히 은거하여 아는 것도 애꾸눈처럼 모른 척해야 이롭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아는 척하며 섣불리 나서다가는 모함을 받을 상이다. 더욱이 자신의 분수를 망각하고 경거망동한 행동을 한다면 화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이 괘상으로 본다면 항상 불안한 상태에서 주(主)가 되기보다는 안정된 상태에서 종(從)의 길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丁酉’에 대한 역학적인 해석이다.

    420여 년전 이순신은 국난극복의 막중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었다. 한 개인의 안녕을 뒤로 한 채 항상 불안한 상태에서 주(主)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요시라(要時羅)의 간계, 원균의 모함, 조선수군의 궤멸 등 일련의 불리한 상황들이 이순신의 마음을 항상 압박하였다. 대의를 실현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 결국 모함에 빠지고 백의종군하는 죄인이 되게 한 상황을 만들었지만, 이순신은 결코 구차하게 화를 피하려 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그래도 국가를 위한 살신성인의 자세로 주(主)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재앙이 따랐어도 그의 업적은 위대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주(主)가 되려고 급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국 과욕과 허영심으로 인한 자승자박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성현과 범인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뇌택귀매괘의 구이(九二) 효사의 의미가 주는 교훈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경거망동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순신은 전란 중에 항시《난중일기》를 쓰면서 자신을 성찰하였다. 남에게 명령하기 전에 우선 자신부터 바르게 해야 한다는 유학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의 정신세계는 범인이 미칠 수 없는 지선의 경지이다. 단순히 전쟁의 승리만을 위해 노력했다기 보다는 인간다운 삶의 도덕적 가치를 추구한 삶속에서 인생의 승리를 이루어 낸 것이라 하겠다.
 

  요즘 이러한 이순신에 대한 깊은 이해없이 이순신을 말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렇다보니 이순신의 정신을 호도하거나 이순신의 어록을 왜곡하여 해석하고 심지어 남의 이론을 자기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진리를 가장한 사이비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순신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는 큰 기류 속에서 보이는 한 현상이다. 아무리 해박한 지식이 있어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허한 자세로 임하는 것이 선비의 자세이자 이순신의 정신이다. 그러함에도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허장성세하여 주(主)가 되려고 혈안이 된다면 그의 앞길은 명약관화할 것이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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