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실현

  인간사회에서 인간의 인성과 도덕에 대한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중요시되어 왔다. 그때마다 유학(儒學)에서 제시하는 덕목이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이 되었고, 도덕추구를 위한 심성수양이 인간생활의 보편적인 방편이 되었다. 역대의 역사적인 위인들이 위대하게 된 이유도 바로 심성수양을 통해 항상 도덕실천에 힘썼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금에 관통하는 규범을 실현하기 위해 인성교육은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순신이 위대한 인물이 된 것도 바로 유학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순신은 본래 무과출신의 장수였지만, 평소에는 문인의 소양을 쌓은 선비였던 것이다. 그런 영향으로 일상생활에서는 항상 도덕규범으로 자신을 근신하며 절제하는 생활을 하였고, 마침내 유학의 대표적인 이념인 자신의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체득할 수 있었다.

  인격수양은 한 개인의 심성수양은 물론, 가족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회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의 규범적이고 윤리적인 행위가 물아(物我)의 사이에서 유기적인 조화관계로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순신이 평소에 쌓은 인격수양의 결과가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게 함으로써 부모에게는 효도를 나라에는 충성을 이루게 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순신은 전쟁 중에 항시 백성을 돌볼 줄 아는 목민관의 역할도 다하였다. 백성이 불안하면 국가의 기반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병신년(1596) 2월 흥양현감 배흥립이 ‘백성을 침해한 사건’을 보고하자, 해당지역의 관리들을 모두 처벌하였다. 또한 전남 광양지역이 황폐한 것을 보고 참혹함을 느껴 군역을 면제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였다(《난중일기》 윤8월 14일). 이처럼 이순신은 전쟁에 시달리는 민초(民草)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항시 노력하였다.

   이순신은 어버이에게는 극진한 효자였고, 나라에는 헌신한 충신이었으며, 부하에게는 능숙한 지휘관이었고, 백성들에게는 어진 목민관이었다. 어떤 경우든 항상 자신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盡己]는 자세로 임했기에 가능했다. 유학의 유(儒, 선비 유)자에는 본래 유(柔, 부드러울 유)자와 유(濡, 젖을 유)자의 뜻이 있다. 어진 이가 부드럽게 마음을 적셔주듯이 남을 감화하는 것이다. 유학을 독실이 배운 이순신에게는 남다른 감화력이 있었다. 이것이 일상에서는 주변인들에게 신망을 얻게 했고, 전쟁에서는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하여 승리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자세로 일관한 이순신은 후대에 인간의 도덕을 실현한 위인으로서 길이 남게 되었다. 인간이 지켜야 할 오덕(五德, 仁義禮智信) 중에 인(仁)이 최고의 덕목이다. 중국 진(秦)나라 말기의 은사 황석공(黃石公)은 “인이란 사람들이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니, 은혜를 베풀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지님으로써 그것을 만들어 간다[仁者人之所親, 有慈惠惻隱之心, 以遂其生成].”고 하였다(《소서》〈원시〉). 올바른 인성을 가진 인격수양자가 널리 사랑과 동정을 널리 베풀어 나간다면, 진정한 도덕을 실현함으로써 끝내 사회의 기강이 바로 서게 될 것이다.

    글: 노승석 이순신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이순신의 승리비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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