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義妓)

  1596년 9월 8일 이순신은 이날이 세조(世祖)의 제삿날이라서 새벽 조반에 올라온 고기반찬을 먹지 않고 도로 내놓았다. 자고로 국가나 조상의 기일(忌日)에는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예법이었다. 아침을 먹은 뒤 길에 올랐는데 감목관과 영광군수(김상준)를 만나고 국화 떨기 속에 들어가서 술 몇 잔을 들이켰다. 여기서 자연의 정취를 느낄 줄 아는 이순신의 문인적인 기상을 엿볼 수 있다.

  3일 뒤 이순신은 영광(靈光)에 갔다. 영광 군수(김상준)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들어와 함께 이야기했다. 이때 영암에 머물고 있는 한양의 기생 내산월(萊山月)이 와서 만났는데 밤이 깊도록 술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 이 내용이 《난중일기》에 나오는데, 여기서 내산월이란 인물은 2004년에 필자가 처음으로 밝혀냈다. 조선사편수회에서 간행한 《난중일기초》에 “세월산(歲山月)”로 오독된 이유로, 그전까지만 해도 정확히 알 수 없었고 홍기문과 이은상도 세산월이라고 오역했다.

  세산월이란 이름은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 인물로 입증되었다. 또한 친필 초고본 《난중일기》를 분석해 보면, 해 새[歲]자가 쑥 래[萊]자의 오독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내산월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문헌에서 확인되었다. 이춘원(李春元 1571-1634)의 《구원집(九畹集)》에 보면, 한양기생 내산월에게 준시[贈洛妓萊山月]가 있다. “스스로 예쁜 것만 믿다가 홍등가에 잘못 들었는데 천애의 땅에서 영락할 줄 어찌 알았으랴. 번화한 거리에서 한번 더럽혀지고 바닷가 꽃 속에서 부질없이 풍월읊네. 한 가득한 오주에서는 봄 풀이 푸르고 꿈 깨는 금곡에서는 석양빛 가득하네. 아름다운 얼굴 빌려오지 못하고 나이만 들었으니 붉은 촛불과 맑은 술잔 그대 어이하리오(自信嬋娟誤狹斜 豈知零落在天涯 塵埃一失城南道 風月空隨海上花 恨滿筽州春草綠 夢驚金谷夕陽多 韶顔不借年華晩 紅燭淸尊奈爾何)”

   위 시에서 “천애(天涯)”와 “해상(海上)”은 그 당시 내산월이  머문 영암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허균이 지은 《성소부부고》18권〈조관기행(漕官紀行)〉에도 “내산월은 낙빈선(洛濱仙, 기생)과 함께 법성포에 우거하며 관아의 연회에 참석하여 관원들에게 술을 따르고 금가(琴歌)를 들려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같은 내용을 미루어 볼 때 내산월이 영암 법성포에서 관기로 활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구전설화에 의하면 내산월이 평소 흠모해던 이순신에게 몇 차례 편지로 만나기를 청하고서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는 한양에서 지내다가 중년 이후에는 영암 법성포에 살았고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 때 많은 금괴를 바쳤다고 한다. 《난중일기》기록을 볼 때 이순신이 영암에서 내산월을 만난 것은 사실로 확인된다. 내산월이 그 당시 기생의 신분이긴 했으나 전쟁에 도움을 준 점에서 남다른 의기(義妓)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글: 노승석 이순신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이순신의 승리비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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