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 고증

  《난중일기》1597년 5월 21일자에 “죽을죄도 아닌데 누차 형장을 맞아 거의 죽게 되었다가 물건을 바치고서야 석방 되었다. 안팎이 모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죄의 경중을 정한다. 이것이 이른 바 ‘백전(百錢)의 돈으로 죽은 혼을 살린다[一陌金餞便返魂].’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관아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죄의 경중이 결정되는 행태를 풍자한 내용이다. 예나 지금이나 죄인이 물품과 돈을 대신 바치고 속죄 받는 행위는 항상 비판을 받는다.

    위에 언급된 “일맥금전편반혼(一陌金餞便返魂)” 일곱 글자의 의미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이와 같이 세상을 경계해주는 의미가 담긴 구절이 1935년 조선사편수회의 오독으로 인해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다. 왜냐면 그 글귀 안에 들어 있는 ‘일백 맥(陌)’자를 ‘맥 맥(脈)’자로 잘못 판독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시비를 가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출전을 밝혀야 한다. 그러함에도 조선사편수회는 물론 오늘날까지 많은 연구자들은 필자가 해독하기 전까지 이 내용을 전혀 밝히지 못했다. 심지어 이 오독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는 학자도 있다.

   2007년 필자는 먼저 이에 대한 출전을 명나라 구우(瞿祐)가 지은《전등신화(剪燈新話)》〈영호생명몽록(令狐生冥夢錄)〉에 나오는 영호선(令狐譔)이 지은 7언 시구에서 찾았다. 이 글은 어느 날 병사한 오로(烏老)를 위해 그 가족들이 불사(佛事)로서 많은 돈을 불살라 저승의 관리가 기뻐하여 소생하게 했다는 소문을 접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강직한 선비 영호선이 지은 풍자시이다. 바로 탐욕스런 자가 돈으로 환생한 것을 비판한 시구인데, 이순신이 이를 《난중일기》에 인용한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겠다. 우선 일맥(一陌)에서 맥(陌)자는 ‘일백백(佰)’자와 통하므로, 일맥은 곧 “백 장의 종이돈”, “한 꿰미의 돈”으로 일백전(一百錢)을 뜻한다. 중국 원나라 때 왕자일(王子一)의 《오입도원(誤入桃源)》에 보면, “백장의 종이돈[一陌紙]을 불살라 각 집마다 평안을 기원한다.”고 하였고, 중국의 장회소설인《수호전》에 “하구숙의 손안에 백장의 종이돈[一陌紙錢]이 쥐어진 채 왔다.”고 한 내용이 있다.

   그 외 조선 후기 학자 이명오(李明五)의《박옹시초(泊翁詩鈔)》에는 “점포가 멀어 일백전(一陌錢)이 없다.”고 하였고, 유언술(兪彦述)은 《연경잡지》에서 “산해관에서 북경지방까지는 백개를 일맥(一陌)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일맥(一陌) 뒤에는 항상 돈이란 말이 관용적으로 붙기 때문에 일맥(一陌)은 돈의 단위를 나타내는 관용어임을 알 수 있다.

   이를 미루어 보면 ‘맥(陌)자’에 대해 조선사편수회가 ‘맥(脈)’자로 판독한 것이 얼마나 심각한 오류인지를 알 수 있다. 일맥(一脈)은 “강물이나 산맥의 한 줄기”를 뜻하므로 “일선(一線)”과 같은 의미이다. 게다가 “일맥금전(一脈金錢)”이란 말은 한국과 중국의 고전문헌 어디에도 없는 말이다. 이를 굳이 해석하면 “한 줄기 금전”이 되는데 의미가 통하지 않는 말이다. 설사 글씨 형태가 맥(脈)자가 맞더라도 그처럼 쓰인 용례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교감(校勘)해야 한다.

    선행 판독의 오류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이 또 있다. 최덕중(崔德中)이 쓴《연행록일기》2월 19일자에도 “일맥금전편반혼(一陌金餞便返魂)”구절이 나온다. 내용을 보면, 짐 운반 담당자 난두(欄頭) 등이 배마다 은 10냥씩을 사행(使行)에게 받아 폭리를 취하고 요동까지 운반하는 짐꾼들을 혹사하였다. 일행의 짐이 너무 많아 모두 손해를 보아 동팔참(東八站) 고군(雇軍)과 호상(胡商)도 모두 업(業)을 잃었다. 결국 이들이 송사를 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백전의 돈으로 죽은 혼을 살린다.[一陌金錢便返魂]”라는 시구의 의미를 여기서 징험했다. 청나라 조정의 신하들도 이런 폐단을 잘 알지만, 돈 많은 자에게 팔려가서 이의가 있는 자는 귀양을 보낸다 하니, 참으로 애통하다.                                 -《연행록》〈연행록일기〉(한국고전번역원)-                                

  요컨대 일맥금전편반혼(一陌金餞便返魂) 구절의 출전은《전등신화》와《연행록》이다. 출전을 무시하고서는 결코 정확한 해석을 할 수가 없다. 이 두 출전에 근거한 필자의 새로운 해석에 대해 많은 고전전문가들이 공감하였다. 이러한 교감 사례를 통해 문헌고증에 의한 해석이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방법을 거치지 않은 판독은 남에게 공감을 얻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결국은 고전에 대한 전문성의 문제이다. 여기서 문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문팔초이(文八草二)의 의미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이순신의 승리비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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