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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석의

이순신의 창(窓)
한문학 연구를 35년간 했으며 전문번역가로서 다년간 고전번역을 해왔다.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했고,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등재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현재 이순신관련 문헌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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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발굴11] 이순신에 대한 오해와 진실해독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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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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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번역에서 초서체로 된 고문헌을 해독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자칫 글자형태만을 보고 섣불리 판단하면 오판할 수 있으므로, 항상 용례와 전후의 문맥을 잘 따져봐야 한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바로 고전해독에 관건인 문리력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문팔초이(文八草二)”인데, 이는 초서 글씨 형태보다는 문리력에 더 비중을 둔다는 의미이다.

   마치 암호문과도 같은 초서체 글씨를 정확히 해독하려면 우선 한문문법과 고전의 전고(典故)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옛날에는 한문문법서가 없었기 때문에 다독을 중시했지만, 요즘은 체계적인 한문문법서를 많이 활용하는 추세다. 19세기 독일의 언어학자 게오르그 폰 가벨렌츠(Georg von der Gabelentz, 1840-1893)가 최초 중국어 문법서를 간행했고, 청대(淸代) 학자 마건충(馬建忠)이 중국고문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면서 오늘날의 고전연구에 문법연구가 필수적이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난중일기》를 해석하는 데도 일반적인 고전 문법을 적용하여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1935년 일정시대 때 간행된 《난중일기》판본인 《난중일기초》에는 미상과 오독의 글자들이 매우 많았다. 이로 인해 후대에는 많은 오해들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와 유사한 사례들을 비교분석부터 해야 한다.

  예로 병신년 9월 14일자 “여진과 함께 했다[女眞共].”는 글귀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 글에서 공(共)자는 필자가 해독하기 전에는 조선사편수회에서 간행한 《난중일기초》본의 “스물입(卄)”, “서른삽(卅)”자를 따라 숫자로 표기하거나 해석을 생략했다. 그러나 실제 이순신이 20일을 뜻하는 “입일(卄日)”[갑오년 3월 20일]과 30척을 뜻하는 “삽척(卅隻)”[갑오년 3월 3일]의 글자와 비교해보면 이 공(共)자와는 분명히 다르다.《난중일기》에는 인명 뒤에 숫자를 적은 사례가 전혀 없다.

  《난중일기》전체 내용 중에는 공(共)자가 72회 나온다. 이는 주로 부사어로 쓰였는데, “함께 이야기하다[共談]”, “함께 먹다[共啖]” 등의 내용이다. 여기서 공(共)은 중국어로 yiqi[一起], 영어로 “with”, 즉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이순신은 인칭 뒤에 동사를 쓰면서 바로 그 뒤에 이 공(共)자를 보어(補語)로 자주 사용했다.

○ 장흥부사와 녹도만호가 와서 함께 했다[長興鹿島來共]<갑오 8월 13일>

○ 충청수사가 술을 내오기에 우수사와 두 조방장이 와서 함께 했다[忠淸水使進酒, 故右水使․兩助防將來共]<을미 9월 6일>

○ 활 15순을 쏘고 경상수사도 와서 함께 했다[射帿十五巡. 慶尙水使亦來共]<병신 6월 24일>

   위의 예문을 봐도 공(共)자는 어떤 별다른 의미 없이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공(共)자 앞에 여자 이름이 오면 의미가 달라지는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에 오해가 될 만한 어떤 의미도 더하지 않았다.

 ○ 저녁에 좌수사가 와서 이별주를 마시고 전송하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介, 여자종)와 함께 했다.[夕左水使來, 別盃而送, 則醉倒宿于大廳. 介與之共.]<병신 3월 9일>

위 예문의 공(共)자는 여전히 “함께 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바로 여진공[女眞共]의 공(共)자도 이처럼 글자대로 해석하면 이해되므로, 굳이 다른 말을 더 넣을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사례를 보겠다. 유성룡이 생질 이찬(李燦)에게 보낸 편지에 공(共)자를 사용한 내용이 있다.

 ○ 개복(改服)하는 것은 마땅히 관부에서 성복하기를 기다린다. 그런 연후에 여염집 사람과 함께 했을 뿐이다[與閭閻之人共爲之而已]《서애집》

 여기서도 공(共)자의 의미는 위의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주민들과 함께 어울린다는 뜻이다. 이 공(共)자를 문학적 상상력을 더할 수 있는 시로 사용할 경우에는 과연 어떻게 표현될까. 매천 황현이 읊은 시를 예로 들겠다.

 ○ 행색이 가쁜한데 처와 딸과 함께 했네[行色翩然妻女共](《매천집》〈聞金滄江去國作〉)

이 시구에서 처녀공(妻女共)의 공(共)자는 아내와 딸과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가족간의 화목한 의미가 담겨 있을 뿐, 이 역시 오해가 될만한 어떠한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요컨대 위의 여진공[女眞共]의 공(共)자는 위의 여러 예문에서 쓰인 공(共)자의 의미와 다르지 않다.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담화를 나누거나 틈이 날 때 시간을 함께 하는 행위를 나타낼 뿐이다. 이처럼 고전을 해석하는 데는 글자의 차이로 오역이나 오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유사한 사례와 정확한 문맥을 짚어보면 해답은 그 안에 있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10여 년 전에 이미 바로 잡은 내용이지만, 하나의 교감 사례로서 이충무공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새삼 도움이 되고자 설명해보았다. 그 당시 고전전문가들도 이에 대해 많은 공감을 하였다.

글: 노승석 이순신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 노승석의 대표적인 난중일기 연구 업적

① 1916년 아요야 나기 난메이(靑柳南冥)의 일본판《난중일기》확인(2008)

② 《충무공유사》를 완역(2007), 일기초에서 32일치 일기 확인.

③ 난중일기 교감(校勘) 사항(174건)을 학회에 보고게재(2009년 우리한문학회 kcl)

④ 32일치 일기를 보유한 《교감완역 난중일기》간행(민음사 2010)

⑤ 홍기문의 한글본《난중일기》책자 처음소개(kbs, 2013)

⑥ 고상안의《태촌집》의 난중일기를 합본 보유함.(2104)

⑦ 이순신이 나관중의《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에서 인용문 찾음.(2014)

⑧ 금토패문 전문을 약포 정탁의 기록인 《임진기록》에서 찾음(2016)

⑨ 난중일기 교감(校勘) 사항(174건)을 학회에 보고게재(2009년 우리한문학회 kcl)

⑩ 난중일기 교감 사항(200여 건)을 수록(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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