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환경에 맞는 새 패러다임 필요

UCC 시대엔 이용자가 곧 제작자 - 소수의 배타적 권리 보장해야

 

  디지털화된 소스로 음악을 듣는 형태가 일반화되면서 음원 시장을 둘러싼 저작권 문제가 갈수록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PC를 기반으로 하는 MP3 포맷 파일 사용이 시작되면서 불거진 전통적 음원 제작자와 최종 소비자 간의 저작권 문제는, 냅스터 신드롬과 함께 논란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최근 애플의 스티브잡스가 전면적인 DRM 폐지를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나섰고 국내에서는 삼성이 소리바다와 공동 사업을 선언하면서 이슈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하지만 논쟁 주체마다 시각과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도 아직 모두가 공감할만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 상태다.

 

  디지털음악산업발전협의체(디발협)는 지난 2월 ‘디지털 음악산어의 구조’를 주제로 기자 토론회를 개최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는 소리바다, 벅스뮤직이 최근 시행하고 있는 non-DRM 정책과 일반 사용자 및 일부 휴대용 음악재생기기 업체의 DRM 전면 철폐 움직임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서울음반, 워너뮤직코리아, CJ 뮤직, 소니비엠지 뮤직 등 대형 음반사들이 회원으로 있는 디발협은 소리바다 및 벅스뮤직의 정책에 반대하며 전면적인 DRM 철폐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직배음반사는 초기에 마이크로소프트의 DRM을 사용했고 이후 국내 각 음반사도 각각의 폐쇄형 DRM을 개발하여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디발협의 주장에 따르면 ‘불법’ 다운로드 서비스 업체들이 성행하면서 DRM 업체들이 개발을 포기하게 됐고 전체 DRM 시장이 침체하며 호환 가능한 업계 표준을 만드는 논의 자체가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동통신사들이 누드콘텐츠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콘텐츠 보호를 위해 독자적으로 강력한 DRM을 개발했지만 온라인 음악 서비스에 적용하기에는 덩지가 너무 컸고 따라서 음악파일용 DRM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DRM 없애야 하는가
  디발협의 의견에 따르면 DRM은 디지털 콘텐츠 제작자 혹은 제공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고 적법한 사용자만이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도록하는 필수적인 장치이다. 창작물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화됐기 때문에 저작권을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DRM은 콘텐츠를 소유하기 위해 정당한 대가를 치른 소비자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만일 DRM의 ‘기능’을 최소화하고 싶다면 무조건적인 폐쇄가 아니라 표준 DRM을 개발하여 호환성을 늘리는 등의 방법으로 이용자 편의를 제고해야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디발협은 DRM 표준화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DRM을 표준화하기 위해서는 기술 공개가 불가피한데 이럴 경우 DRM 해제 역시 쉬워진다. 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매우 정교한 기술을 적용해야하는데 이럴 경우 거꾸로 호환성 면에서 불리해진다. 대표적인 예가 마이크로소프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음원을 제공하는 웹사이트와 미디어플레이어 간의 호환성 제고하기 위해 개발한 솔루션 ‘PlayForSure’는 호환성을 해결하는데 실패했다는 것. 따라서 현재 고유한 폐쇄형 DRM을 개발하여 적용하고 있다. 완전 개방으로 인한 암묵적 불법 복제 허용과 폐쇄적인 고유 방식 고수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디발협의 박성진 간사는 “현재의 DRM 논란이 정치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디지털 음악 시장에 합리적인 룰이 필요하고 여기에 DRM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시장의 경우 초기에 불법적으로 디지털 음악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합법화로 돌아선 업체들이 DRM 적용 없이 음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소리바다와 벅스뮤직의 경우 콘텐츠를 보호하기 위해 필터링을 적용하는 경우는 50%에 불과하다. 즉, 사업자가 음성 내지 양성 시장이라 판단하는 것과 사용자가 합법 또는 불법이라 여기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며 부분적으로는 사업자가 필요한 기술과 제도적 장치를 이용하여 시장을 통제할 필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비영리 단체 정보공유연대(ipleft.or.k)의 의견은 상이하다. 이들은 전면적인 반대를 표방한다. DRM은 콘텐츠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제한하려는 정책을 기술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콘텐츠 제작 업체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DRM 개발과 적용에 필요한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새술은 새부대에
  정보공유연대는 한발 더 나아가 음악, 영상 등의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비영리적’ 접근 및 이용이 보장돼야한다는 입장이다. 저작물에 대한 접근이나 이용은 기본적으로 저작권이 규제할 수도, 규제해서도 안되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은 아날로그 시대의 그것과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철학이 깔려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콘텐츠에 대한 접근 및 이용이 반드시 ‘복제 행위’와 그 ‘전송’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이 아날로그 환경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행해지던 복제와 혼동돼서는 안된다는 것.

  공유연대는 이러한 ‘공정이용’의 경우에는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DRM은 목적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이용자의 접근과 이용을 제약하기 때문에 저작권법에 의해 보장되는 공정이용 상황이라해도 기술적 제약이 있다면 이용 역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만일 DRM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공정이용의 경우 사용자의 자유도를 높이기 위해 DRM을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이 같이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사업부는 최근 소리바다와 공동 사업에 관한 원칙에 합의했다. 삼성전자측은 아직 MOU를 교환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적어도 이 합의가 삼성전자의 핸드폰에 이동통신사 종류와 무관하게 음악파일을 다운받아 담을 수 있게 하여 단말기 판매를 확대하려는 애플의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디발협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불법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업부는 SMS(Samsung Media Studio)를 통해 자사의 MP3 플레이어에 음원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SMS를 통해 이용자는 블루코드테크놀로지(bluecord.co.kr)가 운영하는 음악 포털 뮤즈(muz.co.kr)의 음원을 구매, 다운로드한다. 모든 음원에 대해 저작권료를 지불한 뮤즈와 달리 소리바다는 저작권료를 지불하지도 않고 DRM이나 적극적인 전수 사전 필터링(positive filtering)을 거치지도 않은채 음원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전자와 후자는 불법과 합법이라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보공유연대의 오병일 운영위원은 “표준 DRM이 없는 상황에서 이용자는 자신이 소유한 기기에 따라 콘텐츠 이용에 제약을 받는다”며 “음반사들이 소리바다나 벅스뮤직의 이러한 방침을 자사의 사업영역 확장만을 위한 것이라 비판한다면 자신들 역시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할 것”이라 못박았다. 어쨌든 이용자가 불합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기존 음원 업체의 각성도 필요
  삼성도 사업 확장을 위해 non-DRM 정책에 편승했고 많은 통신사 역시 디지털 음악파일 다운로드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지금 과연 전체 음악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디발협은 전체 음악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CJ 뮤직의 신상규 과장은 “non-DRM 정책이 음원권리자 뿐 아니라 온라인 음악서비스 시장 전체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라며 “사전 협의 없는 non-DRM 음원 무제한 정액제 서비스가 전반적으로 트래픽이 감소하고 있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는 전체 음반시장에서 ‘불법’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불안감에 근거한다. 한국음악산업협회 및 소프트웨어진흥원의 자료에 의하면 음악 시장의 전체 규모는 2000년 약 6000억원에서 2003년 약 9000억원으로 성장했다. 같은 기간 불법 음악시장은 약 1500억원에서 5265억원으로 성장했는데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25%에서 58%로 크게 증가했다.

  신 과장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서비스 사업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기존 법규를 준수하고 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배려한 모델이 돼야한다고 말한다. 어느 국가, 어느 나라에서도 ‘무료’와 ‘불법’을 이길 수 있는 모델은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최근 소리바다와 벅스뮤직에서 주장하는 사업 방식은 밸류체인 상에 있는 모든 사업자와 이용자에게 최소한의 만족도 줄 수 없다”면서 “일단 저지르고 나서 이용자를 볼모로 합의를 요구하는 역반하장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 말했다.

 

  그러나 연대는 음원업체는 문화적 생산물을 경제적 상품과 동일시하는 관점 자체가 바뀌어야한다고 말하며 리눅스와 같은 공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이용자가 느끼는 효용성이 같은 시장 내에서 배타적인 저작권을 가지는 독점 상품을 사용하는 이용자의 효용성보다 훨씬 크다는 예를 들며 문화의 생산과 향유가 시장논리에 종속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문화적 다양성 보장돼야
  현재 디지털 음악 시장은 많은 부분 주요 이동통신사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유통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창작자가 이익을 내고 이용자가 풍부한 콘텐츠를 더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어야하지만 실제로는 ‘배달업체’에 수익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IPTV 등의 새로운 미디어 영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심지어 망∙플랫폼 신규 사업자를 규제하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중소 사업자들이 공정한 경쟁을 하지 못하고 초기부터 도태되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포털 사이트의 언론 통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처럼 디지털 콘텐츠 장악력이 소수의 거대자본에 의해 결정되지 말란 법이 없다. 삼성-소리바다 건은 단말기 사업에 관련된 것이지만 이 역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해당 영역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일반인들이 쉽게 창작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UCC라는 말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이용자와 생산자가 동일해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문화 생태계가 지금보다 훨씬 더 풍부해질 포텐셜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의 저작권법이 이러한 가능성을 일부 제약하고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작년 12월 저작권법 전문 개정안이 국회본회의를 통과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OSP(online service provider)의 저작권 보호를 위한 기술적 조치 강화조항과 친고죄 폐지 조항이다. 104조에서는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불법 전송을 하지 못하게하는 기술적 조치를 의무화했다. 140조는 저작권자의 고소고발이나 검사의 공소 없이 수사기관이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현행 친고죄 조항을 비친고죄로 변경했다. 133조에 의하면 문화관광부 장관은 온∙오프라인에서 복제물을 수거, 폐기, 삭제할 명령권을 가진다. 음원 제작자들은 권리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필터링을 하도록 한 조항을 지적하며 모든 콘텐츠를 필터링해야 한다는 것.

  공유연대 오위원은 “2000년대 들어 도입된 전송권은 문화에 대한 비영리적 접근과 이용마저 제한하고 있다”며 “이용자는 제도권 산업이 생산하는 콘텐츠의 기계적 소비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 텍스트기반의 초기 PC 통신 시절부터 콘텐츠의 핵심은 이용자가 스스로 생산하는 저작물, 즉 UCC였다. 만일 당시부터 현재의 저작권법이 적용됐다면, 그리고 실제로 저작권 보호 없이 콘텐츠생산이 불가능했다면 지금과 같은 정보의 바다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이용자들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저작권 제도 내에 공정이용 영역이 확대돼야하며 한 우리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한다고 보고 있다. 현실적인 방안의 하나는 획일적으로 운영되는 저작권법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콘텐츠의 특성과 가치에 따라 저작권 보호 기간을 탄력적으로 달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티브 잡스의 공개 편지 사건 이후 DRM 문제가 디지털 음악 산업 내의 문제로 주로 논의되고 있지만 머지 않아 화상, 영상, 방송, 신문기사, 교육 등 모든 디지털 컨텐츠 산업이 직면할 수 밖에 없는 문제로 확장될 것이다. 이용자, 창의적 및 상업적 콘텐츠 생산자, 유통자 모두가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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