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교훈이 나의 스승

 이순신은 전쟁 중 진영에 있을 때 항상 혼자 사색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였다. 그래서 《난중일기》에는 “혼자 앉아 있었다[獨坐]”는 말이 많이 나온다. 항상 인격수양하는 자세로 생활한 것인데, 그가 추구한 것은 일상에서는 인륜의 도리이고, 전쟁에서는 승리하는 전략이었다. 일찍이 병서(兵書)를 탐독하여 전쟁 중에는 교훈이 되는 내용들을 일기에 옮겨 적기도 하였다. 남이 보지 않는 혼자만의 경지, 즉 자신을 근신하는 신독(慎獨)의 경지에서 옛 교훈을 통해 지혜를 추구한 것이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 지은 《청성잡기(靑城雜記)》 〈성언(醒言)〉에 보면, 이순신이 세상을 피해 은거한 도우(道友, 도 닦는 벗)를 통해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구해보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 벗은 전쟁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고자 보내준 것이다. 몇 년전 필자는 이순신이 《삼국지연의》에서 인용한 글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 글은 《갑오일기》에 11월 28일 이후 기록과 을미년 7월 1일자에 적혀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밖에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인물)이 없고, 안에는 계책을 세울 기둥 (인재)이 없다[外無匡扶之柱石, 內無決策之棟樑].”     -《교감완역 난중일기》258p-

촉한의 유비(劉備)가 조조(曹操)를 대항하기 위해 조조가 두려워하는 원소(袁紹)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는 그때 정현(鄭玄)이 한 말인데, “한(漢)나라가 쇠퇴하여 간신들만 날뛰고 나라의 안팎에는 인재가 없는데, 나라가 위태롭고 백성이 도탄에 빠진 상황에서 유비와 협력하면 중원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 말을 하였다. 결국 원소에게 중원을 회복하려면 유비를 지원하라고 설득한 것이다. 또 이순신은 다음의 글을 적었다.

“배를 더욱 늘리고 무기를 만들어 적들을 불안하게 하여 우리는 그 편안함을 취하리라.[增益舟船, 繕治器械. 令彼不得安, 我取其逸]”  --《교감완역 난중일기》상동 -

이는 원소의 지원출동을 반대한 모사(謀士) 전풍(田豊)이 한 말이다. 막강한 조조의 부대를 바로 대응하는 것 보다는 장기 전략을 세워 자국의 내실부터 다져야하고,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백성을 안정시키고 군대의 수비력부터 강화하면 목적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원소는 끝내 이 말을 듣지 않고 출전했다가 패하고 돌아와 후회하게 되었다. 전후의 사정을 살피지 못한 성급한 판단과 무리한 출동이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순신은 전풍의 말처럼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 우선 민생안정과 군사력 강화에 힘써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쟁 중에 항상 군량비축에 힘쓰고 전쟁에 시달리는 민초들을 살피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던 것이다.

갑오년(1594) 11월 28일 이후 이순신은 5언 장편의 소망(蕭望) 시를 지었다. 장문포(長門浦) 해전에서 큰 전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을 떠올리며 중국의 명장들처럼 적을 소탕하고 싶은 간절한 우국충정을 시에 담았다.

     나라의 다급한 형세에                  國有蒼皇勢
     누가 능히 평정할 일을 맡으리오        誰能任轉危
     배를 몰던 몇 해의 계책은              扣舷經歲策
     이제 성군을 속인 것이 되었네          今作聖君欺
     중원회복한 제갈량이 그립고             恢復思諸葛
     적을 몰아낸 곽자의 사모하네            長驅慕子儀            -《교감완역 난중일기》262p-

이순신은 매번 전쟁에서 승리를 했지만, 이때 전공을 세우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중국의 두 위인을 떠올렸다. 어려운 한계상황에서 유비를 도와 적벽(赤壁)에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고 촉한을 건립한 제갈량과 당나라 현종 때 안사(安史)의 난리를 평정한 곽자의처럼, 자신도 하루속히 난리를 평정하고자 하는 강한 염원을 드러내었다.

이처럼 이순신은 선비가 인격 수양을 통해 진리를 추구한 것처럼 옛 위인들을 흠모하며 그들의 전략을 본받고자 하였다. 이러한 자세는 매번 전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독하는 선비의 모습이다. 이는 결국 자기관리의 수단이 될 뿐 아니라, 처세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제갈량은 “몸을 다스리는 방법은 힘써 심신을 수양하는데 있으므로, 정신을 길러 삶을 구한다[養神求生].”고 하였다(《편의십육책》〈거조〉) 심신수양을 통해 삶의 지혜를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는 항상 미진보벌(迷津寶筏)과 같은 것이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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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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